미국에서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처방약 광고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공식 청원이 제기됐다. 미국 소비자 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7월 23일 FDA에 시민 청원(Citizen Petition)을 제출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처방약을 홍보하는 직접 광고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시민 청원 PDF: https://www.citizen.org/wp-content/uploads/260723_Public-Citizen_DTCA-Petition_final.pdf
*다른 미디어의 보도1: https://www.commondreams.org/newswire/fda-should-ban-direct-to-consumer-prescription-drug-advertisements
*다른 미디어의 보도2: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441261/

[처방약 소비자 직접 광고란 무엇인가]
처방약 소비자 직접 광고(Direct-to-Consumer Advertising: DTCA)는 제약회사가 의사나 약사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처방약을 홍보하는 광고다. 미국의 텔레비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증상이 있다면 의사에게 이 약에 관해 물어보십시오”라는 형태의 광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광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약 이름과 치료 대상, 효능을 함께 알리는 ‘제품 주장 광고’다. 둘째, 약 이름만 알려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는 ‘상기 광고’다. 셋째, 특정 질병의 증상과 치료 필요성을 알리지만 제품 이름은 밝히지 않는 ‘도움 요청 광고’다. 이 가운데 약의 이름과 효능을 함께 소개하는 제품 주장 광고가 FDA의 핵심 규제 대상이다. 디지털 시대의 처방약 광고 유형과 규제 문제를 검토한 2023년 학술논문도 이 같은 구분과 함께 인터넷·소셜미디어 광고에 기존 규제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에 수록된 논문
미국에서는 처방약 광고가 허용되지만, 광고는 효능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부작용과, 사용하면 안 되는 경우를 알리고, 효과와 위험을 균형 있게 제시해야 한다. 특히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의 위험 설명은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말과 속도로 전달돼야 하며, 화면의 글자도 일반인이 제대로, 바로 읽을 수 있도록 표시돼야 한다.
<1997년 지침 이후 광고 급증>
미국에서 처방약 광고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전환점은 1997년이었다.
그전에도 처방약 소비자 광고 자체가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 안에서 부작용과 금기 사항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야 했다. 방송 시간이 제한된 텔레비전 광고에서 이 조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실제 광고는 드물었다.
그러나 FDA는 1997년 방송 광고 지침을 통해 광고 안에서 모든 위험 정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주요 위험을 말한 뒤, 전화번호나 웹사이트·인쇄물·의사 또는 약사를 통해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방식을 허용했다.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이 변화가 처방약 방송 광고를 사실상 가로막던 장벽을 낮췄으며, 이후 관련 광고가 빠르게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퍼블릭 시티즌 청원서 원문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은 치료 효과를 내세워 처방약을 일반인에게 광고하는 것을 금지한다. 반면 미국과 뉴질랜드는 광범위한 처방약 소비자 광고를 허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캐나다에서는 약의 이름·가격 등을 알리는 제한적인 광고는 가능하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함께 주장하는 광고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Public Citizen은 왜 ‘강화’가 아니라 ‘금지’를 요구했나>
퍼블릭 시티즌의 핵심 주장은 처방약 광고가 환자를 교육하기 위한 정보라기보다 특정 약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상업 광고라는 것이다.
청원서는 광고에서 환자가 가족과 즐겁게 생활하거나 활기차게 운동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동안, 부작용 설명은 빠르게 지나가는 경우를 문제로 들었다. 소비자는 행복한 장면에 주의를 빼앗겨 위험 정보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청원서가 인용한 연구에서는 2004년과 2016년에 방송된 주요 처방약 광고의 약 94%가 긍정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2015∼2016년 텔레비전 광고를 분석한 별도의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 광고 모두가 안전성 정보를 설명할 때에 춤추는 사람이나 잦은 화면 전환 같은 시각적 요소를 함께 사용했고, 79%는 위험 설명과 관계없는 글자를 화면에 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퍼블릭 시티즌 청원서
또 다른 문제는 효과와 위험이 실제 숫자로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원서에 따르면 2018년의 처방약 광고 97개를 분석한 연구에서 위험을 수치로 설명한 광고는 하나도 없었고, 약효를 수치로 나타낸 광고도 약 4분의 1에 그쳤다. “위험을 크게 낮춘다”는 말은 있어도 실제로 몇 명 가운데 몇 명에게 효과가 있었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면 소비자가 효과를 실제보다 크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처방약은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바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결국 의사나 다른 자격 있는 의료인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광고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의사가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광고를 보더라도 약이 남용되지 않을 안전 장치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고를 본 환자가 특정 제품을 이름까지 말하며 요구하면 의사의 처방 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퍼블릭 시티즌이 인용한 2003년 연구에서는 광고된 약을 구체적으로 요청한 환자가 요청하지 않은 환자보다 처방받을 가능성이 크게 높았다. 또 2020년에 발표된 38개 연구의 체계적 문헌 검토에서는 다수의 의사가 환자가 요구한 약을 처방해야 한다는 압박을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청원 내용과 인용 연구
광고가 많이 이뤄지는 약이 반드시 다른 치료제보다 우수한 것도 아니다. 2023년 JAMA에 발표된 연구는 미국에서 판매액이 많은 처방약을 분석한 결과, 추가적인 임상적 이익이 낮다고 평가된 약일수록 제약회사의 판촉비 중 소비자 광고에 배정된 비율이 더 높은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광고가 낮은 치료 가치를 직접 초래했다는 인과 관계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 두 요소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을 보여준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JAMA 연구
<광고에도 긍정적인 기능은 있다?>
논쟁의 반대편에는 처방약 광고가 질병과 치료법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주장이 있다. 광고를 본 사람이 자신의 증상을 인식하고 병원을 방문하거나, 이전에 몰랐던 치료 선택지를 의사에게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환자가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제약업계 단체인 PhRMA는 소비자가 정확한 과학적 정보를 접하면 자신의 건강과 치료 선택지를 더 잘 이해하고 의사와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hRMA의 입장
최근 연구 소개 자료에서도 광고를 보고 병원을 찾은 환자가 다른 질환을 진단받거나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따라서 처방약 광고의 효과를 모두 불필요한 처방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료경제연구소의 연구 소개
다만 광고는 독립적인 환자 교육 자료가 아니라 제품 판매를 목적으로 제약회사가 비용을 지불한 정보다. 따라서 광고가 질병 인식을 높이는 효과가 있더라도, 특정 제품의 장점이 대안 치료나 부작용보다 두드러지게 전달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FDA 단속의 구조적인 한계>
FDA는 원칙적으로 처방약 광고를 방송이나 게시 전에 일일이 심사하고 승인하지 않는다. 회사가 자발적으로 사전 의견을 구할 수는 있지만, 많은 광고 자료는 소비자에게 공개되는 시점에 FDA에도 함께 제출된다. 따라서 문제가 있는 광고가 먼저 노출되고 FDA가 나중에 이를 발견하는 구조다.
FDA가 위반을 확인하면 회사에 광고 중단을 요구하거나 경고장을 보내고, 정정 광고를 요구할 수 있다. 심각한 경우 법원에 광고 금지 명령을 요청하거나 형사 절차를 밟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광고가 이미 오랫동안 노출된 뒤에야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퍼블릭 시티즌의 지적이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은 이러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청원서에 따르면 2017∼2023년 FDA 처방약 광고실이 보낸 경고 서한(warning letters) 40건 가운데 제약회사 등의 후원을 받은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다룬 것은 7건에 그쳤다. 소셜 미디어에는 제약회사 광고, 후원 게시물, 인플루언서 홍보 등이 매우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온라인 광고를 실제로 감시하고 규제하는 FDA의 대응이 광고 확산 속도와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원서 원문
<이미 시작된 정부의 광고 단속>
이번 청원은 아무런 정책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9월 처방약 광고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높이겠다며 단속 강화를 발표했다. FDA는 기존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광고 중단 요구와 경고를 대폭 확대했고, 인터넷 약국과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를 통한 홍보도 점검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미국 보건복지부(HHS)는 상위 10개 제약회사가 2023년 광고와 판촉에 총 138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 의회예산국(CBO)의 분석을 인용해 소비자 광고가 10% 증가하면 처방약 지출이 1∼2.3% 증가하는 연관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모든 광고가 불필요한 지출을 초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광고가 약 사용과 의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HHS의 처방약 광고 개혁 자료
퍼블릭 시티즌은 이러한 단속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경고장이나 광고 중단 요구는 위반이 발생한 뒤의 조치이며, 규정을 완벽하게 지킨 광고라도 감정적 장면과 선택적인 정보 배치로 소비자의 판단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다. 이 단체가 규정 보완이 아니라 전면 금지를 요구한 배경이다. STAT 보도
FDA is urged by advocacy group to ban DTC prescription drug ads
A leading advocacy group petitioned the FDA to ban direct-to-consumer advertising of prescription medicines.
www.statnews.com
<FDA가 곧바로 전면 금지할 수 있을까>
전면 금지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퍼블릭 시티즌은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의 ‘허위표시 의약품’ 관련 조항과 FDA 광고 규정을 근거로, FDA가 처방약 소비자 광고를 금지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광고가 본질적으로 소비자를 오도하는 상업적 표현이므로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도 위배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로서는 청원인의 법률적 주장이다. FDA가 실제로 같은 해석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제약회사는 처방약 광고도 헌법이 보호하는 상업적 표현이며, 모든 광고를 일괄적으로 금지하기보다 거짓·과장 광고만 규제해야 한다고 맞설 가능성이 크다. FDA가 행정 규칙만으로 전면 금지를 추진할 경우 제약업계의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연방법은 처방약 광고가 지켜야 할 조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광고의 존재를 전제로 한 법률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FDA가 명확한 의회 입법 없이 광고 전체를 금지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향후 법적 논쟁의 핵심이 될 수 있다.
<향후 전망: ‘전면 금지’보다 ‘단계적 규제 강화’ 가능성이 높다?>
이번 청원만으로 미국의 처방약 광고가 곧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FDA는 우선 청원의 주장과 법률적 근거를 검토한 뒤 이를 받아들일지, 일부만 수용할지, 거부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검토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전면 금지보다 다음과 같은 규제 강화가 현실적인 변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
방송 광고 안에서 외부 웹사이트로 돌리던 위험 정보를 광고 자체에 더 충실히 포함하도록 하고, 효능과 위험을 절대적인 숫자로 제시하도록 요구하며, 부작용 설명 중 음악이나 밝은 장면으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식을 제한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가 제약회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밝히도록 하거나, AI를 이용한 맞춤형 광고에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FDA가 이번 청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뿐 아니라 의회가 FDA에 추가 권한을 부여하는지, 법원이 처방약 광고 규제를 어디까지 허용하는지가 중요하다. 전면 금지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번 청원은 처방약 광고 논쟁의 기준을 ‘어떻게 정확하게 만들 것인가’에서 ‘처방이 필요한 약을 일반 상품처럼 광고하는 것이 적절한가’로 옮겨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의 핵심은 환자에게 정보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판매자가 만든 광고와 독립적이고 균형 잡힌 의료 정보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광고를 보고 나서 특정 약을 요구하는 환자와 의학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본질적인 쟁점이다. FDA의 답변은 미국 처방약 광고의 범위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의약품 정보가 어떤 원칙 아래 제공돼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